[강원도민일보] 천년의 신명은 올해도 멈추지 않았다

강릉단오제위원회 | 조회 494 | 작성일 : 2021-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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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울려 다니기 딱 좋은 호시절이다.신종 감염병이 없었다면 지금쯤 나라 안 곳곳이 불야성 축제판으로 들썩였을 터이다.축제라는 것이 본디 지치고 힘든 사람들의 행복지수를 높이기 위한 것 이라면,너나없이 힘겨운 우울·고립감에 시달리는 지금이야말로 절실하다.그러나 우리가 알고있는 축제는 군중이 집합해야 판이 짜여지니 ‘듣보잡’ 감염병이 무서운 기세로 퍼진 이 수상한 시절에는 판을 펼치는 것이 영 글러버려 국내·외 수많은 축제가 백기를 들고 판을 접었다.

하지만 필자가 살고 있는 강릉에서는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졌다.연중 최대 축제 단오제가 어김없이 지난 6월 21∼28일까지 판을 펼친 것이다.‘사회적 거리두기’가 예방·방역의 기본인데 무슨 짓 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세계유산 단오제는 올해도 수릿날의 신명을 의연하게 이어갔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축제장이 남대천이 아니라 ‘온라인’이라는 것 뿐 이었다.감염병 사태로 오프라인 대면 접촉의 길이 막히자 온라인 공간에 어울림 마당을 개설,축제의 새 길을 선도적으로 개척한 것이다.단오제를 기다려온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체험·참여 행사와 공연을 SNS와 단오TV 중계를 통해 ‘방구석’에서 즐기며 천년축제의 주인공이 됐다.단오 신주(神酒)를 빚기 위한 쌀을 모으는 ‘신주미 봉정 릴레이’에는 올해도 100가마(80㎏ 기준) 넘게 산더미처럼 쌀이 쌓였다.

‘감염병 전쟁’의 와중에서 그 희한한 진풍경을 목도하고 있자니,강릉 출신인 고 최승순 전 강원대 교수의 회고가 떠오른다.최 교수는 2009년 율곡학회에서 펴낸 ‘강원여지승람∼전쟁통에서도 꽃피운 교육열과 단오 문화’라는 글에서 6·25 전쟁 당시 단오장 풍경을 이렇게 회상했다.

“휴전 막바지,생사를 건 전쟁이 치열한데,강릉에서는 단오 행사가 한창이었다.남대천 다리를 통해 삼척으로 부상병들을 실은 군용트럭이 수도 없이 먼지를 피우며 달려가는데,그 트럭이 다니는 국도 바로 옆에서는 단오의 축구 경기가 한창이었다.참으로 우리 민족,우리 역사는 불가사의한 데가 있는 민족이요,역사라 생각했다.(중략) 전쟁과 평화가 한 스크린에 겹쳐져 있어 어느 것이 실상이고,어느 것이 허상인지 분간키 어려웠다.”

잠시 머릿속으로 그 풍경을 그려보자니 칼날 위 무녀의 춤사위 처럼 아슬아슬하고 눈물겹다.

포탄이 오가는 전쟁통에도 멈추지 않은 축제,강릉단오제의 끈질긴 생명력 근간에는 ‘우리’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공동체 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단오의 공동체 의식은 힘겨운 파종기를 끝내고 이웃과 어우러져 한바탕 신명을 돋운 농경민의 협동 의식과 맥을 같이 한다.태생적으로 설날이나 추석 보다도 훨씬 공동체 의식이 강한 명절이다.감염병이 무서운 기세로 번지는 지금,공동체 정신은 한층 더 소중해졌다.마스크를 쓰고 주먹 악수를 하면서 거리두기를 하는 것도 혹시 모를 전파를 막겠다는 이웃사랑의 발로다.칼날 위 숱한 고난을 이겨내면서 고단한 사람들에게 활력을 불어넣고,오늘에 이르러서는 비대면 어울림 축제의 새로운 전형을 선보인 강릉단오제의 공동체 정신이 코로나 재난 속에서 ‘백신’ 처럼 강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출처 : 강원도민일보(http://www.kado.net)

2020.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