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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례

제례

제의는 같은 이상과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신에게 지내는 제사의례이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는 지낼 공간과 받을 대상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어떻게 제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강릉단오제의 제의 공간은 시간이 흐르면서 대관령에서 강릉지역으로 확대된다. 국사행차를 통해 신목이 지나는 지역을 신성화하면서 남대천 굿당까지 일원을 성역으로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대관령의 신성함을 그대로 남대천으로 옮겨 놓는 것과 다름없다.

제의를 받는 대상은 주신격인 국사성황과 산신으로 지역공동체 신앙의 주축이다. 국사성황은 신목, 산신은 괘와 관련 있으며, 성황의 사자에게 물려가 여신으로 좌정하는 여성황도 함께 제의의 대상이다.

제의 방식은 유교와 무교식이 혼재하는 이중성이 강릉단오제의 특징이다. 산신제부터 송신제까지 먼저 유교식 제사 지내고 이어서 무교식 제의가 계속된다. 즉, 같은 목적을 가진 행위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제의 공간

대관령 재궁골은 능경봉에서 선자령으로 이어지는 능선 아래 계곡이다. 재궁골 동쪽 숲속의 빈터, 아늑한 곳에 강릉단오제의 주신들이 좌정하고 있다. 주소는 평창군이지만 강릉시에서 임대하여 관리하고 있다. 이곳에 국사성황 범일국사를 모신 성황사, 산신 김유신을 모신 산신당이 있고, 기도처인 칠성당과 샘물 용정이 모여 있어 '신터'라 부를 만하다.

신터는 신을 모시는 지역민들에게는 신이 존재하는 신성한 공간으로, 신이 머물고 있다고 생각하는 성역이며 제의를 행하는 제장이다. 하늘과 땅을 연결시킬 수 있는 우주의 축으로 인식되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강릉단오제의 근본을 세우는 성역으로서 지역 공동체 신앙의 성지라고 할 수 있다.

대관령 재궁골 신터는 성황사, 산신각 그리고 칠성당과 용정이 서로 보완작용을 하면서 신터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다. 이 공간에서 산신제와 국사성황제가 올려지고 신목을 베어온다. 용정의 맑은 물을 가지고 메를 짓고 정안수를 떠서 신에게 정성을 드리는 곳이다.

대관령 정상의 재궁골 신터는 지역민들에게 신성한 공간으로 인식 되고 있으며, 인간계로부터 멀리 떨어져 신성성이 강하고 신앙적 의미와 부합되는 제당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제의 대상

대관령 산신

대관령에 산신이 언제, 어떻게 좌정했는지는 단서를 찾을 수 없지만 산신이 신라장군 김유신이라는 것을 처음 밝힌 사람은 허균(許鈞)이다. 허균은 계묘년(1603)에 명주에 머물며 단오제를 보고 기록을 남겼다. 김유신은 명주에서 공부하면서 대관령 산신에게 무예를 배웠고 선지사에서 칼을 만들어 삼국을 통일했고, 죽어서 강릉의 수호신, 산신이 되었다는 것이다. 대관령에서 김유신이 산신에게 무술을 배웠다는 것은 이미 산신이 존재했다는 뜻으로 산신신앙이 오래전부터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강릉단오제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단옷날 오시(12시)에 굿당에서는 군웅장수굿이 열린다. 이날 큰 무당이 활옷을 입고 놋동이를 입으로 들어 올리는 '신의 힘'을 보여주어 놋동이굿으로도 불린다. 무가에는 김유신이 산신이며 국사성황신인 범일국사에게 무예와 무법을 연마하고 삼국을 통일한 뒤 죽어서 대관령 산신이 되었다고 전한다. 김유신과 범일의 생몰연대를 따지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만 신화는 먼 훗날 만들어 진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인정할 수도 있는 일이다.

대관령 국사성황

강릉단오제의 주신격으로 추앙되고 있는 국사성황신은 산신과 마찬가지로 언제 어떻게 좌정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의미 있는 기록은 없다. 하지만 강릉에서는 신라 고승 범일이 국사성황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범일을 대관령 성황으로 지목한 기록은 1931년에 조선총독부에서 발간한 『생활상태조사 강릉군』 대관령 새신부분에 "대관령에는 한 개의 성황이 있는데, 즉 범일국사로서 강릉에서 출생했다고 한다."라고 조사되어 있다.

국사성황은 강릉시 구정면 학산 출생으로 탄생에 얽힌 설화가 전한다. 처녀가 해가 떠 있는 샘물을 마시고 태기가 있었고 아이를 낳았다. 뒷산 학바위에 버렸으나 학이 보살펴 살았으며 국사가 되어 이름을 떨쳤다. 죽어서 대관령 서낭신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신화는 범일의 신이한 탄생과 모험 그리고 위인이 되고, 죽어서 신으로 등극하는 과정을 영웅담처럼 차례로 보여주고 있다. 세간에 범일을 뜰 범(泛)자, 해일(日)자로 쓰기도 하는데, 이는 신화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원명은 범일(梵日)이며, 국사성황은 신라 고승 범일국사라는 확신을 심어주고 있다.

국사여성황

지역민들은 여성황을 국사성황의 부인으로 인식하고 있다. 여기에는 이류교혼(異類交婚) 설화가 전한다. 국사성황이 정씨네 부모의 꿈에 나타나 청혼을 하였으나 거절당하자 호랑이를 보내 마루에서 쉬고 있는 정씨녀를 업어와 아내로 삼았다. 이날이 4월 15일이다.

대관령에서 시신을 수습하여 친정어머니 안동권씨 산소 아래에 안장했는데 강릉교도소 서쪽 산능선 (맴소 : 홍제동 303번지)에 있다. 그 뒤로 정씨 집안의 딸은 여성황신으로 추앙받게 되었다. 초계 정씨 경방파에는 국사여성황의 설화를 뒷받침하는 이야기가 사실처럼 전한다고 한다.

국사여성황사는 강릉시 남문동에서 홍제동으로 옮겼다가 2009년 강릉취수장 인근의 남대천변으로 다시 옮겨서 지었다. 음력 4월 15일 대관령 신터에서 제의를 마치고 국사행차에 나선 국사성황은 여성황사에서 합사(合祠)한다. 그리고 본제가 열리는 날에는 여성황사를 나와 맨 처음 친정인 경방댁에서 굿 한석을 펼치고 영신행열에 참여한다.

제례 방법

유교식 제사

강릉단오제의 특징을 꼽는 중에 빠지지 않는 것이 제의의 이중성이다. 이는 제의에서 유교식과 무교식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는 의미이다. 상극의 이념을 가진 두 제의가 충돌이 일어날 것도 같은데 한자리에서 연이어 펼쳐지는 포용력을 보여주는 곳이 강릉단오제이다.

강릉단오제의 제례는 신주빚기부터 산신제, 성황제, 봉안제, 영신제, 네번의 조전제와 마지막으로 송신제 까지 9번의 제례를 지낸다. 제례를 지내는 형식은 모두 같은 절차에 의해 진행되고 신격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이것은 제의에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이루어진다.

제의 순서를 의미단위로 나누면 6가지로 줄여 볼 수 있는데

① 참신례(參神禮) - 신을 뵈옵는 예이다.

② 전폐례(奠幣禮) - 신께 폐백(幣帛)을 올리는 순서이다.

③ 헌관례(獻官禮) - 신께 술과 향을 올리는 절차이다.

④ 망료례(望燎禮) - 신께 바쳤던 폐백과 축문을 태우는 절차이다.

⑤ 음복례(飲福禮) - 신께서 주신 음식을 감사히 나누어 먹겠다는 절차이다.

⑥ 사신례(辭神禮) - 신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는 절차이다.

이를 다시 절반으로 줄이면 참신례와 헌관례와 망료례로 단순화 할 수 있다. 참신례는 신을 청하여 뵙고 인사를 하는 순서로서 청신에 해당한다. 그리고 현관들이 술과 향을 올려 대접하고 신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올린다. 오신이다. 그리고 망료례는 신에게 바쳤던 폐백과 축문을 태워 신을 하늘로 돌려보내는 절차로서 무속에서의 소제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제사를 받는 신과 절차, 장소에 차이가 있을 뿐이지 본래 의미는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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